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선정릉 도굴사건 (문단 편집) == 선릉과 정릉이 도굴되다 == [[1592년]] 음력 [[4월 13일]]에 [[일본]]의 [[아즈치모모야마 시대|도요토미 정권]]이 [[조선]]을 침공하면서 [[임진왜란]]이 발생하였다. 그러던 중 1592년 음력 12월 1일에 왜적이 선정릉을 도굴했다고 한다.[[http://sillok.history.go.kr/id/knb_12512001_001|기사 참조]] [[선조수정실록]]엔 이 날짜에 도굴되었다고 기록하면서도 [[주석(언어)|주석]]으로 정확하게 언제 도굴되었는지는 모른다고 적고 있다. 그러므로 그보다 더 이전에 도굴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. 조선 조정은 1593년 음력 4월 13일에 경기좌도 관찰사 성영(成泳)이 올린 장계를 통해 비로소 선정릉이 도굴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.[[http://sillok.history.go.kr/id/kna_12604013_002|기사 참조]] 왜군이 선정릉을 도굴한 시점이 정확하게 언제이며 또 왜 도굴을 한 것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고 단지 추측만 할 수 있다. 한편 정릉에서는 정체불명의 유골이 나왔다.[[https://sillok.history.go.kr/id/knb_12605001_003|#]] 출처불명의 유골이 중종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당시 조정은 생전에 중종을 봤던 사람들[* 임진왜란 때면 중종이 죽은 지 거의 50년이 넘어가던 무렵이다.]을 수소문해 몽타주를 작성했다. 그러나 중종은 키가 큰 편이였고 보통의 체형에 용안은 갸름하나 살짝 얽었고 턱이 굽어 모난 턱이었으며 코가 높되 코 끝이 살짝 굽어 메부리코의 형태였다. 또한 이마에는 녹두보다 좀 작은 검은 사마귀가 있었으며 수염은 적지도 많지도 않으며 수염 색은 누런색이었다. 정릉의 시신은 키가 포백척으로 3척 2촌[* 당시 조선에서 포백척의 1척이 46.6cm인 것을 보면 149cm 정도의 신장이 나온다.]으로 작고, 몸집이 크고 살집이 두둑한 체형이었다. 정릉에서 발견된 정체불명의 유골은 중종이 아닌가 하는 주장이 나왔으나 중종의 것일지도 모른다는 주장에 유골은 정릉 근처의 정결한 곳에 후하게 묻는 것으로 마무리 했다고 한다. 그 유골이 정말 중종의 시신이었는지 아닌지 확실하게 확인할 방법은 아직은 없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